모두의 무대 : 여는 글
회관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창작자와 참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며,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이번 탐구의 시간을 통해 회관이 어떻게 모두의 무대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각자의 창의성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자 합니다. 어디에나 무대는 존재하며, 일상 속 무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니까요. 중앙 무대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가 모두 의미 있는 무대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함께 ‘군산회관’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갑니다.
02. ‘누구나’ 예술 안에서 유영하기 이지연, 스트링피겨
군산회관에서 이지연 ⓒ로잇스페이스
일종의 활동명이자 태도를 보여주는 단어 string figures(스트링피겨. 실뜨기)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예술 영역에서 연구하고, 큐레토리얼 방법을 개발하고, 그 사이에서 교육의 가치를 엮는다. 이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것들을 꺼내고 싶은 마음으로 엉키고 얽히는 것들, 주고받는 것들의 태도를 가지며 살아가려 한다.
◯ 인클루시브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낯선 분들도 많을 거 같아요. 어떤 뜻인지, 왜 필요한지 들려주실 수 있나요?
소통협력센터 군산에서 제안했던 건 군산회관의 유니버설 디자인 연구였어요. 유니버설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목표하는데, 연구를 진행하며 ‘모두’나 ‘위한다’는 단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중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현경의 「장애인 접근성 강화를 위한 박물관·미술관 가이드라인 수립 방향 연구」를 접했는데, 인클루시브 디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시더라고요. 해외에서 발생하는 박물관. 미술관 안팎의 접근성 영역에서도 인클루시브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요.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걸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개별의 특수성을 조금 더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모두’보다는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방식에 가까운 것 같아요.
예술 영역 안에서 누군가가 무엇을 소개하고 표현할 때 두려움이 아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매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낯설고 무섭고 모르는 것들은 서로 잘 보려고 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마주하려 하지도 않는 경향이 큰데요. 회관에 오는 이들이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고 싶었어요.
◯ 연구를 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처음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어요?
너무 좋았어요. 스트링피겨라는 이름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 존재하게 만드는 것, 존재하는 걸 드러내는 것이거든요. 저에게는 아름다운 저항의 방식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어요. 이 연구가 그런 활동이 될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웃음)
◯ 회관을 처음 만나게 된 날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정확하게 기억해요. 하늘이 무척 푸르던 여름이었어요. 김중업 건축가의 작업 안에서 원형의 구성이 자주 등장한다고 들었는데, 건물을 빙글빙글 돌았던 게 기억이 나요. 그중에서도 회관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인상적이더라고요. 큰 유리창이 감싸는 원형 계단을 오르다가 옥상으로 향하는 또 다른 계단에 오를 때 지붕의 동그란 구멍을 발견했어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로 그 광경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당시에는 공사를 막 시작할 때라 내부가 폐허처럼 허물어지고 먼지가 가득했어요. 더럽고 어둡고 컴컴한 보이지 않는 그런 장면들이 내부에 있었다고 하면, 바깥으로 갑자기 펼쳐진 군산의 모습이 무척 아늑해 보였어요. 뒤로는 작은 산이, 앞으로는 낮은 아파트와 건물이 있더라고요. 그 사이의 회관이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유니버설 디자인 연구 프로젝트와 연계 워크숍을 진행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이 심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공간일 수 있어요. 군산명화학교 친구들에게 특히 그렇죠. 성인의 걸음으로는 몇 걸음이 안 되는 500m 남짓의 거리에서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잘 모르는 환경을 마주할 때 어떤 걸 볼지 궁금했어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마음이 밀접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 가까이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회관까지 감각을 증폭하고 천천히 걸어가는 활동을 꾸렸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친구들에게는 이게 보통의 방식이었어요. 걷는 동안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가깝게 보는 게 익숙한 거죠. 늘 하고 싶었던 거고요. 그 방식을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이미 친구들이 감각하는 방식이 세상을 마주하는 긴밀한 시간인데 학교와 사회는 그 방식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산회관에서 이지연 ⓒ로잇스페이스
◯ 일 년 전에는 학생들과 회관 밖에서 군산명화학교까지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다면, 지금 준비 중이신 프로그램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친구들이 회관의 풍경을 만드는 주인공이 될 거예요. 친구들에게 20배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루페를 선물해 회관을 더 가까이 볼 수 있게 하려 해요. 건물 벽의 틈일 수도 있고, 회관을 기어다니는 개미일 수도 있고, 무대의 바닥일 수도 있고요. 회관 구석구석을 확대한 눈으로 마주했을 때 친구들이 보고 느끼는 게 무엇일지 궁금해요. 회관에서 어떤 공연이나 전시 등의 여러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회관 자체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군산회관 사용법 Ways of Using GCC》에서 군산명화학교와 진행한 워크숍 ⓒ어셈블파이브 문다형
《군산회관 사용법 Ways of Using GCC》에서 군산명화학교와 진행한 워크숍 ⓒ어셈블파이브 문다형
◯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며 변화된 회관의 모습을 오랜만에 마주하셨죠. 어떠셨나요?
너무 좋았어요. 회관은 굉장히 크고 오래된 건물이잖아요. 안으로 들어서면 내부라고 느껴지기보다는 많은 공간이 한꺼번에 뒤섞여 있다는 인상이 들어요. 각각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다른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어딘가는 울림으로 가득 차 있고, 또 다른 어딘가는 환하다가 어두워지기도 하고요. 그런 다양한 모습을 만난 거 같아요.
◯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듯 공간도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군요. 마지막으로 회관에 어떤 풍경이 그려지길 바라시나요?
앞서 말했듯 다가오는 11월에 〈산책의 기분〉이라는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군산명화학교 친구들과 회관을 걷다가 머무르려 해요. 로비에 방석을 깔고 머무르거나 공연장의 무대를 서성거리고요. 문화공간에 들어갈 때 친구들은 계속 주의를 받아야 해요. 우리는 서로 타인을 방해하면 안 되는 존재들이잖아요. 목소리를 내면 안 되고, 만지면 안 되고, 소란하게 하면 안 되는 존재들인데, 이번에는 그 공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할 거예요. 로비가 너무 좋았던 건 공간이 높고 커서 목소리가 엄청 울린다는 점인데요.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무 기대가 돼요. 또 다른 방문객이 오셨을 때 그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읽혔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