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산, 나의 회관 일지 #2]
조명으로 무대를 밝히는 감독, 최종은님
최종은 조명감독은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시민문화회관에서 조명감독으로 일했다. 이후 예술의전당으로 옮겨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30년 가까이 군산의 모든 공연은 최 감독의 손을 거 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예술의전당 근처 카페에서 최 감 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군산 예술의 전당 인근 카페 커피브라운에서 만난 최종은 감독 ⓒ 로잇스페이스
1997년부터 조명을 담당하셨죠. 공무원 생활은 92년도부터 하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조명감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92년 2월에 도시계획과로 발령받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7살 때였죠. 처음엔 공설운동장 관련 업무를 했고, 97 년 1월에 시민문화회관에 부임했습니다. 공무원 생활 5년을 제외하고 계속 문화 예술 분야에서 조명감독으로 근무한 셈이죠. 시민 문화회관이 생긴 지 얼마 안 돼 근무를 시작하고 폐관하기까지 15 년 동안 근무했어요.
시민문화회관 무대감독은 한 명씩 배치되죠. 혼자 시민문화회관 조명감독을 담당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으신가요?
제가 딸 만 둘이에요. 토, 일요일에 주로 공연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갖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처음에 조명감독을 할 때는 새로운 배움이 많았죠. 33살 때부터 시민문화회관에 근무했으니까 얼마나 열정이 가득해요. 모르는 건 찾아가서 배우고 그랬죠. 다른 분들은 무대 와 가까이 있으니 문화 예술 공연을 많이 본다고 하는데 사실은 더 시간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최 감독은 시민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을 거치며 25년 넘게 조명감독으로 근무했다. ⓒ 로잇스페이스
낯선 일을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당연히 있죠. 너무 한곳에 있다 보니 새로운 것에 배움이 많이 줄었어요. 저희는 공연을 먼저 보는 사람이에요. 부족한 것을 메꾸는 사람이죠. 예술의전당은 조명 설비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바뀌었는데, 시민문화회관은 대부분 아날로그 방식이었어요. 손을 직접 거쳐야 작업 이 가능했죠.
조명감독으로 일하며 예술가분들과 소통하는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주최 측이나 기획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어요. 전문 인력이 적었기 때문에 적재적소에 일손이 되었죠. 회관에서 공연할 땐 월요일에 출근하면 칼라지를 다 준비해놨어요. 공연마다 필요한 조명 색이 다 다르거든요. 일주일 공연의 시작이죠. 공연 조명에 맞는 큐시트가 다 나와요. 옛날에는 직접 재단을 했어요. 저는 조명 1.5세대예요. 공연법 생기기 전을 1세대라고 2002년을 기준으로 공연법이 시행됐거든요. 98년도부터 해서 각 극장에 전문 감독이 있어야 하는 걸로 공표가 됐는데 시행 후 2년의 유예기간이 있었거든요. 1.5세대는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모든 조명 기술이 발전했어요. 변환하는 시점에 1.5세대가 있었죠. 아날로그를 바탕으로 하면서 약간의 디지털을 접하게 된 시기죠. 수도권은 먼저 디지털 장비를 활용했고 군산 같은 소도시는 아날로그 방식을 많이 사용했어요.
시민문화회관에선 직접 손으로 무대를 만드셨군요. 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주최 팀에 조명 큐시트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하면 돼요. 시민들이 직접 무대를 꾸릴 때는 거기에 맞는 디자인을 직접 했죠. 문화 예술 전문인 자격증이 있어요. 한국 무대예술 조명 전문인 1급이라고 쓰여 있죠. 저희는 보통 사람들이 감독이라고 불러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는데, 채만식 원작의 연극 『탁류』가 군산에서 열렸어요. 당시 책으로 보고 연극으로도 봤죠. 군산을 배경으로 만든 소설이라 기억에 남아요. 당시는 연달아 공연하는 일이 잘 없었는데 그때는 3일 동안 진행됐죠.
최종은 감독님이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꼽은 소설 탁류. 군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2004년 11월 9일에 시민문화회관에서 오페라 공연이 이루어졌다.
무대감독은 항상 먼저 준비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일하는데요, 그럼에도 항상 무대 뒤에 있는데 아쉬움 은 없나요.
솔직히 말하면 서운할 때도 있죠. 뮤지컬, 콘서트는 커튼콜 박수를 받잖아요. 커튼콜을 받을 때 스텝은 없어서 아쉬움도 남죠. 근데 이건 정말 가끔 드는 생각이고, 밤늦게까지 작업하면서도 공연을 만드는 건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군산 연극 협회에서 하는 작은 공연이었는데, 마지막 인사에 저하고 박 감독을 함께 인사시켜 줬죠. 그때가 처음이었어 요. 관객들 박수를 같이 받을 땐 울컥하더라고요. 박 감독하고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실수하면 관객이 다 느끼기 때문에 아무 실수 없이만 끝나도 성공한 거라고 말하죠.
마지막으로 감독님에게 군산 시민문화회관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공무원으로 시작해 조명을 배웠어요. 시민문화회관은 저에게 제2의 직업을 갖게 된 곳이죠. 공무원 신분으로 이렇게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은 제가 알기론 저희밖에 없을 거예요. 30년 넘게 한 곳에서만 있다 보니 다양한 일을 못 해본 거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요.
군산 시민문화회관에 특별한 추억이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군산시립교향악단 출신 음악가 ▲공연 순찰 진행햇던 나운지구대 순경 ▲1995년 2013년 군산 영광여자중학교 합창단장 출신 학생 ▲시민문화회관에 서공연했던 신풍초등학교 출신 어른이 ▲2010년 제9회 리틀모델선발대전에 선정된 어린이 ▲시민문화회관을 놀이터 처럼 사용했던 20-30대 ▲나의 회관일지에 특별한 추억을 나누고 싶은 사람 누구나!
문의 063-464-1504 (소통협력센터 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