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산, 나의 회관 일지 #2]
소극단을 채우는 대배우 추미경
배우. 1997년, 극단 <사람세상> 창립 멤버로 창단 후 한해도 빠짐없이 소극장에서 연극을 올렸다. 2001년에 시민문화회관에서 연극 『탁류』 에서 주인공 ‘정초봉’을 연기했다. 너도 예술가, 나도 예술가,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다음 주에 공연이 있네요?
우리 소극장에서 하는 정기 공연이에요. 보러 오세요.
오, 재미있겠어요.
엄청 재밌죠. 우리 단원이 쓴 작품이기도 하고, 배경이 군산이거든요. 배우 둘이 나와서 20대부터 60대까지 보여주는 연극이에요.
익숙한 지명도 많이 나오겠네요.
맞아요. 군산 차병원 사거리, 백년광장 같은 동네 지명이 많이 나와요. 그런 재미를 관객들이 좋아해요. 내가 사는 곳 지명이나 아는 장소가 나오면 재미있어하죠. 이번 작품도 엄청 좋아할 것 같아요. (웃음)
2023년 11월 17일부터 26일까지 연극 『그렇게 좋은감』이 사람세상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사람세상의 76번째 정기 공연이다. 사람세상은 1997년 극단을 창단하고 한 해도 쉬지 않고 매년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나운동에 위치한 극단 ‘사람세상’ ⓒ로잇스페이스
사람세상은 26년 된 근단이잖아요. 그때 처음 군산에 오셨나요?
네, 97년도에 왔어요. 남편이 여기서 극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거든요. 저는 그때 익산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어요. 창립 멤버로 쭉 활동하고 있어요.
두 분 다 고향은 다른 곳으로 알고 있는데, 왜 하필 군산이었나요?
몰라요. (웃음) 남편이 간다고 해서 울면서 따라오긴 했는데, 그때 말로는 본인이 없으면 소극장 찾기 어려운 곳에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처럼 매년 정기 공연도 꾸준히 하고 계시네요.
사람세상은 정극을 많이 해요. 저희가 소극장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시민들 이야기,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연극으로 담아내고 있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시는군요.
처음 시작도 그랬어요. 그냥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극을 하자. 근데 화려한 연극이 아니라 작은 극을 해보고 싶었어요. 소극장은 배우의 땀방울과 호흡까지 다 보이잖아요. 아주 가까운 내 이웃의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이었죠. 관객들도 그 안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으시나 봐요.
2001년, 시민문화회관에 오른 연극 『탁류』는 군산 출신 작가 채만식의 대표작으로, 1930년대 몰락한 양반 가문 딸 ‘정초봉’의 기구한 인생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현실을 그려냈다. 추미경은 주인공 ‘정초봉’ 역을 맡아 그 시대의 전형적인 순종형 여인이자, 개인보다는 가족의 삶을 위해 희생하는 인물의 일대기를 연기했다.
『탁류』에서 주인공을 맡으셨네요. 정초봉 삶을 연기하기 위해 특히 준비한 부분이 있었나요?
우선 무대 셋업을 저희가 직접 했어요. (웃음) 『탁류』를 올리기 위해서는 집 한 채가 지어져야 했거든요. 초봉이가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필요했고, 약국 같은 중요한 장소도 필요했죠. 저희가 무대 세트를 세웠어요. 합판을 사서 마루도 만들고.
소극장에서 공연하다가 시민문화회관에서 연극을 하려면 장비도 그에 맞춰서 크게 준비해야 하는군요.
맞아요. 시민문화회관이 큰 극장이잖아요. 우리 소극장보다 소리 전달이 잘 돼서 좋았어요. 포켓 공간도 넓거든요. 배우들 대기하기도 편하죠.
포켓 공간이 뭘까요?
무대 소품을 갖추어 놓고, 중간에 극이 바뀔 때 대기하는 공간이에요. 시민문화회관은 동선이 많이 확보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배우는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소품까지 직접 챙겨야 하군요.
연기를 하려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인원이 많아 분업했다면 좋았겠지만, 소규모 극단은 어쩔 수 없죠. 직접 소품도 만들었는데, 극 중에 초봉이가 맷돌을 들어 던지는 장면이 있었어요. 제가 맷돌을 드니까 앞에 있던 관객이 “저걸 어떻게 들어?” 하더라고요. 저같은 작은 체구로 큰 맷돌을 거침없이 드는 게 웃겼나 봐요. 그때 학생 단체 관객이 많았는데 엄청 놀라더라고요.
실제로 맷돌이 무거웠나요?
그렇지 않죠. 스티로폼으로 만들었거든요. (웃음)
초봉이 역을 연기하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일단 『탁류』라는 작품을 알리고 싶었어요. 저는 군산 출신은 아니지만, 『탁류』는 군산의 문화와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이거든요. 채만식 선생님 작품이 해학적이에요. 그분이 구사하는 언어도 재밌고, 말맛이 살아 있어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곳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원 소설책이 두꺼워요. 저도 연기하면서 처음 읽었는데, 이걸 학생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의 소설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당시 참여하는 배우들한테도 많았죠.
나운동에 위치한 극단 ‘사람세상’ ⓒ로잇스페이스
『나의 회관일지』 1호에 최종은 조명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2001년의 『탁류』로 꼽기도 했어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저도 그분 생각나요. 무대 세팅을 미리 해야 하니까 아침부터 가서 작업을 하는데 규모가 커서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어요. 보통은 거의 밤샘을 해야 하거든요. 처음엔 9시에 끝낼게요, 다음엔 10시, 그다음은 12시… 그러고 있으면 당직하는 분들은 굉장히 괴롭거든요. 사실 그렇게 빌려주지도 않아요. 정해진 대관 시간이 있으니까.
같이 밤샘도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직접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저희 때문에 퇴근을 못 하시니까 마음 상태도 살펴야 하고, (웃음) 눈치를 엄청 봤죠. 음료수 사다 드리면서 세팅 시간을 더 많이 부탁하려고 했던 기억도 있어요.
시민문화회관이 10년 만에 재개관하는데, 어떻게 활용됐으면 좋겠는지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일단 저희 같은 예술가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말 그대로 ‘시민문화회관’이니까요. 작품에 따라서는 소극장도 필요하지만, 더 큰 공간에서 하고 싶은 작품도 있거든요. 어떨 때는 동네 주민들이 만든 작품들이 더 크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도 하고요. 무대에 오르는 경험은, 삶에 있어 자신감을 주고, 관객 입장에서도 보면서 얻는 게 많거든요.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편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잖아요.
나에게 회관이란, 너도 예술가,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과 연극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군산에 대한 역사를 예술로 접목한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 제 개인적인 바람도 있어요.